한국 결혼문화 100년의 관습
마침내 막을 내려
.
배우자 만남에서 모든 조건이 여성보다 남성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남고여저(男高女低)’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남고여저는 한국 결혼문화에서 100년 이상 이어져 온 관습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학벌, 경제력, 직업, 집안 배경이 더 좋아야 하고, 나이 또한 3~4살 많은 조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준은 현실과 점점 맞지 않게 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한 자녀 시대의 도래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축적되어 온 남녀 평등 인식의 확산이 있다.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딸 또한 아들과 다르지 않은 교육과 자원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남녀 간 조건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집값 상승과 고용 안정성 하락으로 과거처럼 한 사람의 소득만으로 가정을 이끄는 구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맞벌이가 보편적인 형태가 되면서 여성의 능력과 소득 역시 가정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다.
결혼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연상연하 커플에 대한 거부감이 눈에 띄게 줄었고, 여성이 남성보다 학벌이나 경제력이 더 좋은 경우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남자가 더 나아야 한다’는 조건보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맞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고여저 기준으로 배우자를 찾다가 스스로 기회를 좁히기도 한다. 조건이 조금만 불균형해도 만남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기업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본인 명의의 주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또한 반드시 집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내려놓지 못했다. 학력과 직업, 인상까지 모두 좋은 상대를 여러 번 만났지만 ‘집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배우자 만남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사회·경제·문화가 응축되어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결혼이 조건의 결합이 아니라 생활의 결합이 된 시대를 살고 있더. 두 사람이 비슷한 눈높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좋은 인연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연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기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배우자 만남에서 모든 조건이 여성보다 남성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남고여저(男高女低)’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남고여저는 한국 결혼문화에서 100년 이상 이어져 온 관습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학벌, 경제력, 직업, 집안 배경이 더 좋아야 하고, 나이 또한 3~4살 많은 조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준은 현실과 점점 맞지 않게 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한 자녀 시대의 도래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축적되어 온 남녀 평등 인식의 확산이 있다.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딸 또한 아들과 다르지 않은 교육과 자원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남녀 간 조건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집값 상승과 고용 안정성 하락으로 과거처럼 한 사람의 소득만으로 가정을 이끄는 구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맞벌이가 보편적인 형태가 되면서 여성의 능력과 소득 역시 가정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다.
결혼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연상연하 커플에 대한 거부감이 눈에 띄게 줄었고, 여성이 남성보다 학벌이나 경제력이 더 좋은 경우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남자가 더 나아야 한다’는 조건보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맞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고여저 기준으로 배우자를 찾다가 스스로 기회를 좁히기도 한다. 조건이 조금만 불균형해도 만남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기업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본인 명의의 주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또한 반드시 집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내려놓지 못했다. 학력과 직업, 인상까지 모두 좋은 상대를 여러 번 만났지만 ‘집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배우자 만남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사회·경제·문화가 응축되어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결혼이 조건의 결합이 아니라 생활의 결합이 된 시대를 살고 있더. 두 사람이 비슷한 눈높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좋은 인연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연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기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