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21회 지리산문학상
여진수 시인 수상
제21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자는 「별곡」 외 58편을 응모한 여진수 시인이다. 심사하는 과정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문학적 포즈이며, 작품들이 문학적인가 아니면 덜 문학적인가, 이런 기준들을 앞세워놓는다. 그러다 보면 심사 과정이 선명해지는데 마침 그때 한 응모자의 시가 눈길을 끌었다. 편편이 고통의 심도가 달랐고 예상을 회전시키면서 바깥으로 시의 힘을 뿜었다. 여러 실험을 거친 후에 도달한 세계는 여타 경쟁 작품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수상작은 2026년 『상상인』 가을호에 특집 게재될 예정이며 이번 지리산문학상 수상자인 여진수 시인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법학 전공, 한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주대학교에서 ‘대학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광수문학상 대상, 광화문글판 창작 공모전 대상, 2026년 제21회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상시집으로 『동서에서 만발하다』(가제)가 발간된다.
□ 심사위원: 김륭(시인) 이병률(시인)
상금은 일천만 원이며 함양군 지자체에서 지원한다. 지리산문학상은 지리산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계간 『상상인』과 지리산문학회가 주관한다.
■ 시상식 2026년 10월 17일(오후 2시) ■ 장소 경남 함양군 함양문화예술회관
심사평
모든 시는 기도를 담았다. 그리고 모든 공모 역시 기도를 담았다는 점은 닮아 있다. 기도가 흐르고 기도가 통하는 시간의 중력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여서 어떤 심사는 즐겁고 또 숭고하다.
응모작들을 심사하는 과정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문학적 포즈다. 작품들이 문학적인가, 아니면 덜 문학적인가. 때로 이런 기준을 앞세워놓고 있다 보면 심사 과정이 선명해지는데 마침 그때 한 응모자의 시가 눈길을 끌었다. 편편이 고통의 심도가 달랐고 예상을 회전시키면서 바깥으로 시의 힘을 뿜었다.
여러 실험을 거친 후에 도달한 세계는 여타 경쟁 작품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별곡」 외 58편은 이 조건들을 충족해주는 작품들이라서 당선작으로 올린다. 함께 심사를 맡아주신 김륭 시인도 심사 당일 이 한 시인의 작품만 거론하였는데, 똑같은 입장을 가지고 심사장에 도착한 나는 놀라고 즐거웠다.
화면이 유연하고, 그 안에서 다른 발성을 하는 시인의 시는, 분명 누가 봐도 좋았으리라.
심사를 마치고 통보를 하는 중에 당선자가 ‘이제 그만 시를 내려놓아야 할 마지막 시기’라 믿고 마지막 투고를 했다고 들었다. 어느 마지막 지점에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심장에 꽂힌 꽃」 외 51편의 시 작품도 잘 읽었다. 잘 읽히는 시들이었고 시적 구조가 튼튼하며 매끈하고 잘생긴 시들이 많았다.
「하얀 사다리 그라피티」 외 54편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수다스럽지 않고 단정한 느낌이 좋았다.
오래 붙들었던 한 계절이 넘어간다. 특히나 응모작들을 준비했던 모든 시간의 주인공들은 이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차례다. 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채 지난 페이지를 붙잡고 있다면 이미 낡고 있다는 증명일 터.
행운이 돌아가지 않은 시인들에게 한 마디 덕담을 건네자면, 우리에겐 다시 쓰는 일 밖에는 남아 있지 않음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전한다. 이 일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쓰지 않으면 우리, 어떻게 살겠는가.
□ 심사위원: 김륭(시인) 이병률(시인 –심사평)
수상소감
여진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법학 전공, 한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 수여. 현재 전주대학교에서 ‘대학 글쓰기’를 강의. 광수문학상 대상, 광화문글판 창작 공모전 대상, 2026년 제21회 지리산문학상을 수상. 수상시집으로 『동서에서 만발하다』(가제)가 발간 예정.
시를 만나자 말 문이 트였다. 제목을 고르며 하루를 닫고, 떠오르는 시어로 아침을 맞는, 언어의 지대에서 10년을 경영했다. 그 세계의 일부는 산과 바람이었다. 동무들과 답사한 휴양림에서 계절의 언어를 얻고, 형제자매 동서들과 나선 여행지에서 호흡하는 자연을 들었다. 어느 가을, 지리산 어귀에서 붉은 시위대를 보았다. 치켜올린 가지마다 숭얼숭얼 엉겨 붙은 홍옥 빛 군중, 뺨을 반짝거리며 통통한 신생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른 봄날 꽃 잔치 뒤꼍에서 수수하더니 들판을 지나고 강줄기를 건너, 산 깊은 골짝에서 해산한 거였다. 산수유가 꽃인 줄도 모르다가 꽃보다 믿음직한 발견이었다.
배운 말은 아름다워, 잊기 어려워 이야기가 살아 있는 산천을 적어 두자. 꺼내어 볼 수 있는 서랍이 되어 보자. 소통이 늘어나고 소명이 생겼다. 산에서 받아 온 게 이리 많은데, 내가 산에 드린 게 뭘까? 서랍 안에서 잠들 뻔한 글을 묶어 지리산에 보냈다. 산정에서 받은 수상 소식은 메아리처럼 신기하고 반가운 응답이었다.
여진수에게 시를 계속하도록 기회를 주신 이병률 선생님, 김륭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지리산문학회 관계자들과 계간 상상인에 감사드린다. 화자의 언어에 손을 잡아주시면 시를 놓지 않겠다고 한 다짐을 다시 올린다. 오랫동안 시의 맥을 이끌어주신 송찬호 시인, 시심을 자극해 준 성은주 시인께 기쁨을 돌린다. 순백의 열정으로 지지해 주신 조해옥 교수님께 경의를 드린다. 좋은 시로 보답하고 싶다.
산천을 누리는 동안 사람과 사랑이 산을 닮았다는 걸 배웠다. 삶의 걸음들이 공유하는 의미가 시가 된다는 걸 비로소 알아간다. 배우고 스스로 익히는 게 사람의 일이라면 시는 계속 태어나고 자라고 싶을 거다. 나서기 좋아하는 시들의 성품은 본래 이타적이기 때문. 묵음들이 곧 목소리를 낼 것 같다.
제21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작품 中
별곡 외 4편
그러니까 그때 내가 청산으로 간 것은 붉은색을 피하라는 그날의 운세, 그걸 믿어 그런 건 아니었다고, 단지 푸름이 좋아서도 아니었고 그저 도망이라고, 여기저기 쏟아지는 피 흘리는 목록에 떨다가 숨다가, 동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보색, 청산은 이별이고 미래가 없고 처음부터 무성한 무정, 말하지 않아도 묻지 않을 터였기에
내가 다시 청산에 간 이유는 잘 익은 들판에서 피를 본 꿈이었다 한 터에서 자라고 동무했으나 피쌀의 역습으로 쌀이 위태로운데, 저들은 외면한다 모두 한 몸이라는 생물학의 기원과 천성이 하나라는 철학이 구구할 뿐
황금 같은 알곡이 검붉은 피쌀에 져 세상은 빈혈이다
고개 숙인 피의자의 맑은 이마 마주 잡은 손
저토록 섬세한데 언제부터 미움으로 병이 들었나
양분의 통로를 누가 막았나
미움은 끈질겼다 사랑하기 두려운 시대
꽃다발을 포개어도 엽서를 쓰면서도 대신 아파할 수 없는 얼굴
화살을 누가 대신 떠안아 준다면,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막 청산을, 그곳의 홍가시를 떠올리던 참이다 윤기 나는 새살 대신 가시를 달고 발끝까지 홍포를 휘감은 나무, 온몸이 커다란 과녁 같아서 그 붉은 방패 뒤에 숨을 수 있어
피 한 톨을 흘리지 않고 색이 된다면,
청산이 붉어지는 사유라 했다
덕지덕지한 흉터까지 감당하느라 홍가시는 한 해 두 번 몸을 사른다 했다
누구라도 아픈 날엔 청산을 가자 홍가시 그늘에 이도 저도 부려놓고
목청껏 다독이며 세상을 모르고 살자
하얗게 살다가 망각으로 세상이 다 묻힌 다음 너도나도 일어나
방주를 열어보자
그 의자
북평 잣나무 골에서 이사 온
삼거리 주막거리
푸르스름에서 어스름까지
가냘픈 네다리로 꼿꼿하였다
의자가 앉은 건지 서 있는 건지
잘라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무릎을 내민 건 확실하였다
잣나무 숲 얼기설기
열두 폭으로 너른 실백 향내에
노곤한 눈꺼풀을 맡기는 남자들
목젖 아래가 괜스레 켕기는 밤도 있었다
풍문엔
만취한 달빛을 대접에 휘저어 기울이더라고
푸드덕 활개 짓도 하더라고
허연 깃털이 아침까지 흩날리고
의자를 빙글빙글 돌려대더니
된서리가 짙게 덮인 유월이고 말았다
북평서 온 그 여자
한 쪽 팔로 괴고 있던 그 의자
학이 되어 돌아갔다는
그 자리서
능수가 채머리를 휘휘 젓고 서 있다
애플수박
그의 발을 담근 대야가 수박을 닮았다
아이들은 수박을 머리에 쓰고 논다 두 개를 번쩍 들어 만세 부르는 아이, 공을 던지듯 주거니 받거니 놀이, 티브이 속 세상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수박나라다
종일 뛰어놀기에 바빠 발에 신을 순 없지 아이들은 그래
- 저 큰 수박을 어떻게 길어올려
1인 가구도 계단뿐인 고층도 수박을 좋아해 여름이 오기 전에 혼자는 혼인하고 고층은 엘리베이터로 이사한다 이유는 수박 또 수박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당신
- 이젠 수박도 달라져야 해
가벼움과 수박에 관한 얘기가 길어 등을 기댄다 오늘 밤 수박 꿈을 꿀 것 같아
불타는 지구가 파먹는 빙하, 씨 없는 신품종
두 발을 수박에 묻고 남자는 생각한다 지구와 인류가 수박을 닮았어
상체가 둥글어져 소파에 파묻힌다
발가락 뿌리에서 발목을 돌아 두 다리는 각각 물관과 체관, 소파를 적시고 벽을 타고 올라 천장을 가로질러 가지 끝까지
양분이 퍼지는 작은 세포에 수분이 돌아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며 여자는 말한 적 있다 우물이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가벼워지는 물, 물로 된 세계
빗물이 달고 시원하다면 우리도 컵만큼 더 가벼워질 거야
줄무늬가 가득한 밭에서 돌아온 여자는
수박을 자르며 이런 말도 했었다
흙에 배를 대고 자란 것이 달콤하다니, 땅 내음을 버리고 유능하려면
이제 금단은 끝나야만 해
사과가 할 일은 사과로 끝나지 않는 일
그러면 더 높아질 거야 우리 모두가
이빨 사이로 새는 소리가 패배한 것처럼 들려서 싫어, 사과라 말고
애플이라고, 한 번 앙다물다 방긋하는 여자의 입술이 닿아
남자는 눈을 떴다
주렁주렁 샤워기에서 달고 시원한 비가 흘러 입술을 적신다
아이들이 팔을 들어 한 손 한 손
수박을 따고 있다 계속 딴다
더 이상 크지 않을
걷는 나무
세간에 단풍이 자자하다 이번 시즌의 주인공은 이 손 저 손 번식이 빠르다 저러다가 세상이 질식할 것만 같아, 골똘해 본다 나무는 무엇으로 유명해질까 땡볕에서 나무는 그림자만으로 사람을 모았다 혁명처럼 봉기하는 봄꽃 무리와, 뼈만 남고도 눈이 부신 상고대까지, 사시사철 잘 나가는 나무는 그럼 언제 기쁠까 기쁠 때가 있기는 할까
철마다 나무에 나는 환호하면서 나무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듣지 못했다 단풍은 병이라던데 어쩌면 지금은 슬픔을 타는지도, 나란히 걸어가길 바라는지도
슬퍼하는 마음은 사람의 일인가 했다 캄캄한 얼굴에도 우주는 어김없이 아침을 열고 태양을 들이밀어 눈을 또 멀게 한다 항해하는 사람들은 날씨를 비나 결국은 날씨 마음, 그처럼 우주는 관심이 없는데
나무는 달랐다 태풍에 허리가 꺾이고 큰불로 가족을 잃기도 한 나무는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바가 있어 나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묻고 물으며 다다른 곳은 숲이 아닌 길, 나무들이 다리를 달고 섰다 쿵쿵 땅을 딛고 오는 소리, 오래된 이력으로 나무는 숨을 쉰다
노오랗게 중심이 선 은행나무 길
혼자 서기엔 다리가 하나여서 마주했다고 한다
모여들어 풍채가 된 길, 늘어나는 자리마다 길이 더욱 정연하다
물 위에도 가지런히 질서가 비쳐
사라진 순간들이 모여들 것만 같아
세월이 된 이름
무너져 쌓인 얼굴
다정하게 나타날 거니 잠시 숨은 거니
샛노란 빛깔에 죽을 만큼 달리면 안녕이 호흡처럼 가뿐해질까
잎을 곧 떨구면 줄만 남은 가지에
그리운 이름들이 날아와 앉겠다 머무는 자리마다
새잎이 안부처럼 돋아나겠다
영남과 의령
명창으로 말하자면 영남은 궁하다 곡창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큰 소리로 훠이 훠이 들판을 누볐다는, 의령을 지켰다는
그리하여 득음한 이야기는 꿈에 가깝다
이삭이 피는 때를 새들은 용케 알아
떼거리로 몰려드는 불청객을 물리치려 영남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어허 물렀거라~~ 훠이 훠어이~~
영남은 목소리가 커 높은 산들이 담벼락을 세웠다
노래 시간에 옆 반의 시비로 난감할 때
의롭게 편들어준 의령, 덕분에 영남은 뱃심이 든든했다
그 힘 하나로 논두렁을 달리는데
허리춤이 흘러내려 주춤하는데
붉은 줄을 본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영남을 위해
서에 번쩍 동에 번쩍 드려놓은 줄, 하나를 잡아채어 허리 질끈 두르고 굵은 채로 휘두르며 훠어이 훠이~ 그러니까 예사 꿈이 아닌 것이다 곤두박질한 논
한가운데 의령이 웃고 있다 희고 기다란 목고개로 덥석
큰 소리로 깨었네 손에 손에 밧줄이
당도한 내실은 산기 가득하더니
우렁찬 울음소리 영남을 닮았네 얼쑤
그리고 얼쑤 연달아 들린 함성 이삭처럼 다둥이네
밧줄의 수만큼 탯줄을 잘랐네
의령은 마침내 곡창이 되어갔네
몸을 던져 지켜낸 알곡처럼 여문 얼굴들
풍년가를 부르네 의령 벌판에 떼창이 떠
(이리 오너라 모두 오너라
아장아장 걸어서 오고 날개 푸드덕 오고)
배고픈 어린 시절이 오네 쫓겨 달아난 새들도 오네
하늘이 저녁마다 홍의를 걸어 영남의 자랑을 듣네
■ 주최: 지리산문학상 운영위원회
■ 주관: 상상인 ‧ 지리산문학회
■ 시상식: 2026년 10월 17일(토)
경남 함양군 함양문화예술회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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