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에도 오세요 - 현금자 산문집
(도서출판 상상인)
책 소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일을 겪는다. 어떤 일은 오래 기억에 남고, 어떤 일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희미해진다. 그러나 사소해 보이는 경험 속에도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하는 단서가 숨어 있다. 현금자의 산문집 『맑은 날에도 오세요』는 흘러가는 일상의 순간을 붙잡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천천히 돌아본다. 가족과 친구, 책과 글쓰기, 농사와 자연, 나이 듦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살아오며 만난 풍경들이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책의 제목이 된 문장은 비 오는 날 우연히 들어간 작은 분식집에서 나온다. 허름한 식당에서 문우들과 잔치국수를 먹은 작가는 따뜻한 한 끼와 다정한 마음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다시 오겠다는 인사에 식당 주인은 “맑은 날에도 오세요”라고 답한다. 이 짧은 말에는 손님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람의 온기와 특별한 이유 없이도 다시 만나고 싶은 관계의 정이 담겨 있다. 작가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행복은 스스로 발견하고 받아들일 때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금자의 산문은 삶의 기록을 단순한 추억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경험은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 삶의 태도와 지혜로 확장된다. 「노랑선씀바귀야, 고맙다」에서 작가는 도로변 씀바귀를 캐 김치를 담갔다가 중금속에 오염되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자신의 욕심과 호들갑을 숨기지 않고 유쾌하게 털어놓은 뒤, 열악한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씀바귀의 생명력에 시선을 옮긴다. 작고 가냘픈 식물이 오염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노란 꽃을 피우는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을 돌아보게 하며, 견디고 살아가는 생명의 힘을 깨닫게 한다.
가족에 관한 글에서도 이러한 사유의 전환은 두드러진다. 어머니와 형제, 남편과 자식에 관한 이야기에는 삶의 무게를 헤아리는 따뜻한 시선이 흐른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작가는 자식의 입장만을 앞세웠던 마음을 돌아본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다룬 글에서는 작가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가 빛난다. 책과 독서 역시 현금자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도서관 책에 끼워진 쪽지를 연애편지로 오해하고 한동안 설레는 「쪽지 소개팅」은 독서가 상상력을 깨우는 즐거운 사건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책을 읽으며 질문하고, 자신의 지식과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생각 없는 독서는 책을 잔뜩 짊어진 당나귀와 같다는 성찰에는 읽기와 쓰기를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가 담겨 있다. 농사와 자연에 관한 글들은 삶의 이치를 몸으로 익힌 기록이다. 벼가 자라고 익어가는 무논의 사계, 마늘 농사를 통해 다시 희망을 얻는 동생, 시금치밭 사이에서 자라난 냉이와 배추밭의 풍경은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가르침을 보여준다.
현금자 산문의 문체는 경쾌하고 친근하다. 짧은 문장과 생생한 구어, 속담과 의성어, 생활에서 건져 올린 비유가 글에 활기를 준다. 작가는 실수와 허영, 서운함과 욕심까지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웃음의 대상으로 기꺼이 내어놓기 때문에 독자는 글 속 화자에게 쉽게 마음을 연다. 그 웃음 뒤에는 삶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성찰이 자리한다.
『맑은 날에도 오세요』는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깊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기쁜 날과 서러운 날은 모두 삶의 한 부분이다. 현금자 작가는 그 모든 시간을 기꺼이 자신의 문장 안으로 초대한다. 그렇게 모인 기록들은 추억을 넘어 삶을 견디고 관계를 이어가는 지혜가 된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작가가 차려놓은 따뜻한 한 끼 앞에 앉는 일과 닮았다. 다 읽고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비 오는 날에도, 맑은 날에도 다시 오시라고.
징검여름을 건너가며
부모, 자식, 손자로 이어지는 다난한 삶의 여정에서, 유일한 위로는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화려한 문체는 아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글은 정겨움으로 다가와 힘든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책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았다. 책은 나의 벗이 되어 각진 마음을 둥글게 다듬어주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시야도 넓어졌다. 책을 읽으며 만난 친구, 산책하며 함께한 나무와 꽃은 어느새 일상에서 길어 올린 문장으로 삶의 이야기가 되었다. 남의 글을 읽다가 마음으로 이어진 글은 다양한 삶의 무늬가 되어 차곡차곡 쌓였다.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만 순간을 글로 적어두면 오래 머문다.
머무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책으로 엮어 세상 사람을 만나려고 기웃거렸다.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용기 내어 책 세상의 언저리가 아닌 문을 열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 얹어 본다. 호기심, 설렘, 두려움 뒤에 감출 수 없는 얼굴로 미소 지으며.
책 한 권을 내기까지 힘들었다. 출간을 왜 출산에 비유하는지도 알았다. 경험의 언어가 모여 만든 책으로, 출산 뒤에 오는 희열을 맛보고 싶다. 마음이 무거운 날에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듯이, 내 글을 읽는 이에게 힘이 되기를 욕심부려 본다.
‘책 나왔어요,’ 하늘에 계신 엄마께 가만히 속삭인다. 내 글쓰기의 시원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2026년 7월
현금자
책 속으로
돌 틈에서 싹을 틔우고 노랗게 꽃을 피운 씀바귀는 사람들에게 척박한 환경은, 이겨내려는 의지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크기는 작지만 살아가기 위해 참는 힘은 사람보다 커서 경이롭기만 하다. 노랑선씀바귀에서 입맛이 아니고 노란 꽃에서 눈 맛으로 생기를 찾고 기운을 얻는다. -「노랑선씀바귀야, 고맙다」 부분
없어진 반지 마음속에서 지우고, 공허한 마음 채울 수 있는 풀꽃반지는 어떨까. 풀꽃반지는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버리지만, 꽃이 주는 정겨움이 있고 어릴 때 추억이 있다. 잃어버려도 또 만들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사라진 반지」 부분
누군가 도서관 책에 끼어 있는 쪽지로 인연 맺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길. 그런 인연 찾아 도서관에 날인 찍어 보면 어떨지. 뚜쟁이 아니면서 책장에서 읽을 책 찾다 말고 주위 살핀다. 쪽지 편지로 좋은 친구 만나면 뜻있지 않을까. 그러면 도서관은 또 다른 명소로 거듭나겠지. -「쪽지 소개팅」 부분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생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생겨나고 사라진다. 우리의 삶처럼 나무의 삶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하니까. 나무도 자연 순환에 동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살다가 사라지는 게 플라타너스뿐인가. 나무가 한세상 잘살다 가면 나무를 품었던 흙도 덜 서운하지 않을까. 어쩌면 사라진다는 것은 새로 생겨나는 것에 삶을 건네주고, 찬란하게 살아가라는 응원일지도 모른다. 플라타너스 번식은 계속 이어질 테니까. - 「플라타너스」 부분
글이 건조하고 긴 문장이 많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집중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메모해 책 항아리에 넣는다. 항아리가 넘칠지 걱정 안 해도 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애장품이 있을까. - 「나의 애장품, 책 항아리」 부분
사랑에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일까. 착시인가, 빗방울에 동글동글 무지개가 도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 투명한 빗방울에서 색을 찾았다. 사랑의 색이 빗방울에 스민다. 빗방울마다 둥지 튼 무지개를 보며 사랑의 색은 무지개색이구나 싶었다. 바람도 무지개색이 사라질까 숨죽인다. 그 모습 오래 남아 S에게 전화했다. - 「마음이 빨강해」 부분
혹독하게 더운 여름을 잘 버텨준 식물의 기를 받으며 걷다 보니 집 앞이다. 염려했던 발바닥 아픔도 견딜 만했다. 오늘 목표 걸음 수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으니 걸음 수 채우려고 거실에서 어슬렁거리지 않아도 된다. 사뿐사뿐 걸어 발바닥 충격 줄이고 길에서 만난 비둘기 한 쌍처럼 건강한 날갯짓 하리라. 길 친구들,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 「길 위 친구들」 부분
아파트 울타리에 보랏빛 열매 동글동글 모여 달고 빠끔히 쳐다본다. 강렬한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보다 예쁜 열매를 자랑하는 듯하다. 그 모습이 샘이 났다. 옳다구나! 너, 잘 만났다. 열매에 어울리지 않게 좀작살나무가 뭐니? 나무에 시비를 걸어본다. 당신 이름도 별로구먼. 이름 갖고 트집이야 하는 듯, 햇살에 반들반들 보랏빛을 발산한다. - 「좀작살나무」 부분
냉이를 통하여 보는 눈뿐만 아니라, 내면의 눈도 밝아지길 바랐다. 사라진 냉이는 후각에 남고 사람 손길이 미치지 않은 냉이는 꽃 진자리에 조랑조랑 씨앗주머니 매달고 지나가던 발길 머물게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트 모양의 씨앗주머니가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고 핸드폰에 담는다. 내년에는 더 많은 냉이를 볼 수 있으리라. - 「냉이 사랑」 부분
죄의식을 갖는다고 폴리시아스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시들었지만 줄기라도 살려보자.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폴리시아스는 가지라도 남겨 삶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축 늘어진 가지를 물병에 꽂았다. 2주일이 지나자 신기하게 뿌리가 돋아났다. 폴리시아스 가지는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상 그냥 등질 수 없어 잘린 줄기에서 잔뿌리가 돋는 모습이 경이롭다. 돋은 뿌리 상할까 조심스럽게 새로운 물로 바꿔주었다. 엄마 나무는 비록 죽었지만 아기나무는 살길 간절히 바랐다. 부디 살아만 다오. 이제 두 번 상처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 「폴리시아스」 부분
휘어진 소나무에 속삭였다. 우리 서로 거울이 되어 기울기 그만하고 허리 곧게 펴보지 않을래. 저 언덕 아래 쭉쭉 뻗은 자작나무처럼. 어쩌면 소나무에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다. 지지대에 의지한 모습이 지팡이에 의지한 미래 내 모습으로 보여서다. -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 부분
차례
1부
노랑선씀바귀야, 고맙다/ 검정 고무신/ 풀무는 돌고 싶다/ 사라진 반지/
사후세계가 섬망으로/ 쪽지 소개팅/ 찢어진 잠옷/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쳐 맸나/
자기야/ 플라타너스/ 갖가지 비빔밥/ 나는 나답게
2부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나의 애장품, 책/ 누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길/
다섯 손가락/ 개미와 베짱이/ 마음이 빨강해/ 마지막 선물/ 무논의 사계/
무화과 꽃/ 밀키트/ 바보 같은 엄마
3부
백 년의 침묵/ 부적이 된 각서/ 분식집/ 삼촌 같은 고모/ 성탄 미사는 고해苦海였다/
두 무덤/ 소이산에 오르다/ 안나의 방에 마실가다/ 어디로 갔을까/ 어울림이 글꽃으로/
길 위 친구들/ 엄마표 청국장/ 웃는 여자
4부
인연의 길/ 저녁노을/ 좀작살나무/ 냉이 사랑/ 배추밭에 훈풍이 / 책 덕후의 삶/
치아가 추석빔을/ 퀘렌시아/ 타일의 미소/ 파수꾼/ 폴리시아스/ 하루의 주마등/
혀 깨문 남자/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
저자 약력
현금자
· 충남 천안 출생
· 교육학 전공(글쓰기 독서 지도사), 12년간 초등학생 독서 논술 지도
· 글로벌 경제 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수필 등단(2024년)
· 월간 좋은 생각 생활문예대전 수상(2025년)
· 산문집 『맑은 날에도 오세요』(2026)
E_mail : haha3650@naver.com
현금자 산문집 맑은 날에도 오세요
초판 1쇄 2026년 7월 25일 | 정가 16,000원 | 134*196 | 288쪽
ISBN 979-11-7490-074-6(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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