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행복했다 - 최상훈 수필집
(도서출판 상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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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의 수필집 『그래도 행복했다』는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이어 붙여 완성한 생의 조각보와 같다. 유년의 풍경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 35년에 걸친 교직 생활,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과 문화, 인생 후반에 이르러 깊어진 성찰이 49편의 글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첫 번째로 독자의 마음을 끄는 것은 유년의 기억이 간직한 따뜻한 온기다. 「양은 도시락」의 찌그러진 도시락과 김칫국물에 젖은 교과서, 「가위에 머문 기억」의 사각거리는 가위 소리, 사람 냄새가 오가던 「골목길」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풍경들이다. 작가는 이를 단순한 향수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양은 도시락에서는 가난한 시절 가족을 먹여 살린 어머니의 수고를 읽고, 옛 이발소에서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무게를 견뎠던 공동체의 온기를 발견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은 오늘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부모를 기억하는 글들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아버지의 손」에서 아버지는 자식을 조급하게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 준 사람이다. 「양파 껍질의 무게」에서는 어머니가 남긴 서툰 손글씨를 통해 희생과 성실,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부모의 부재는 견디기 힘든 상실이지만, 그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는 자식의 내면에서 오래 살아 움직인다.
교직 생활을 다룬 글에는 한 사람의 직업관과 교육 철학이 담겨 있다. 408번의 월급으로 헤아려지는 35년은 생계를 위한 노동의 시간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소명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 「정도正道의 길」, 「제가 해보겠습니다」, 「둥지를 떠나는 날」 등에는 교사로서 겪은 보람과 갈등, 책임과 이별이 솔직하게 펼쳐진다. 작가는 교육이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머물지 않으며, 학생이 스스로 날개를 펴도록 믿고 기다리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여행지에서 쓴 글들 역시 풍경을 소개하는 기행문에 그치지 않는다. 살둔의 숲길, 독도의 바다, 동강의 새벽, 시골집과 돌담, 정원의 사계는 삶의 원리를 발견하는 사유의 공간이 된다. 작가는 자연의 순환에서 비움과 기다림을 배우고, 서로 다른 돌이 어울려 하나의 담을 이루는 모습에서 공존의 지혜를 읽는다. 특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정신은 이 산문집 전체를 이끄는 미학적 태도이자 인생의 지침이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성찰은 더욱 내밀해진다. 「곡선의 길」, 「느려도 괜찮아」, 「덜어냄의 미학」, 「영점」, 「‘지금’에 머물다」 등에서 작가는 속도와 성취에 익숙해진 삶을 멈춰 세우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인생은 곧게 뻗은 길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돌아가고 멈추고 잃어버린 시간까지도 한 사람의 삶을 완성한다. 덜어내고 낮추며 현재에 머무는 태도 속에서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오랜 경험 끝에 얻은 결론이다. 『그래도 행복했다』라는 제목에서 ‘그래도’는 이 책의 중심을 이루는 말이다. 삶에는 상실과 실패, 후회와 고단함이 있었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적지 않았다. 작가는 그 모든 시간을 지워버리지 않은 채 행복을 말한다. 행복은 고통을 없앤 후 찾아오는 것이기보다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한 사람이 알게 된 긍정의 언어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래도 행복했다”라는 고백은 가벼운 낙관보다 깊고, 화려한 성공담보다 진실하다. 이 책은 한 개인의 회고를 넘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주는 따뜻한 인생론 교과서이다.
작가의 말
6년간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모으고 기웠다. 그 과정은 마치 조각보를 한 땀 한 땀 누비는 일과도 같았다. 때로는 단어 하나를 고르지 못해 밤을 새우고, 이미 쓴 문장들을 수없이 허물고 다시 다듬었다. 고통과 산고産苦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길어 올린 49편의 글이 세상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네 부분으로 생의 궤적을 담았다. 시작은 유년의 따스한 풍경들이다. 양은 도시락의 푸근함,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 등 그때의 서정은 나를 지탱한 깊은 뿌리다. 누군가의 빈자리에 남은 양파 껍질의 무늬처럼 사소한 흔적 속에서도 그리움의 원형을 발견한다.
유년의 뜰을 지나 마주한 건 35년이라는 소명의 시간이다. 408번의 월급을 받으며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 날들이었다. 둥지를 떠나며 되돌아본 정도正道의 길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삶의 매운맛은 나를 일깨운 죽비였다.
치열한 삶의 틈새로 여행지의 낯선 풍경과 한국적 미학이 스며들었다. 자연의 숨결을 마주하며 비로소 세상을 읽는 법을 배웠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정신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마지막은 내 삶의 영점을 맞추어 가는 나를 찾아가는 모습의 시간이다. 비움으로 채우는 존재의 리듬과 흐트러진 내면의 질서를 차근차근 돌아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채운 화두는 ‘행복’이었다. 돌아보면 인생의 고비마다 역경과 시련이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고단한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의미로 거듭났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행복했다’라는 것이다.
글의 여백을 채우는 그림에도 혼을 쏟았다. 글만으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그려 넣었다. 연필을 쥔 순간들은 또 다른 방식의 간절함이었다. 행간마다 배어 있는 진심과 투박한 그림 속에 깃든 삶의 향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6. 7.
추천사
하루쯤 늦게 건넨 카네이션, 시간의 마디를 견딘 어머니의 일기장 속 비뚤비뚤한 손글씨, 첫 월급봉투와 마지막 급여 사이를 흐른 세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원고를 읽는 동안 깊은 강물이 마련해 둔 “비밀스러운 장소에 초대된 기분”(「동강의 새벽처럼」)이 들었다.
정선 가수리마을을 오랜 세월 지켜온 늙은 느티나무가 되어 동강의 푸른 물줄기를 굽어보듯 문장들은 나직이 묻는다.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흘려보냈을까.”
최상훈은 오래 바라본다. 책에 함께 실린 연필화들 또한 그러한 시선의 흔적이다. 사각거리는 연필 끝으로 풍경을 담아내듯, 그는 오래 머문 눈길로 남겨진 사랑을 읽어낸다. 그의 시선은 늘 무언가 떠나간 빈자리를 향하지만, 그곳은 상실이 아닌 충만의 자리다. 그가 발견한 빈자리는 “늦게 도착한 마음 위에서 더 크고 환하게 피는 꽃”(「카네이션은 하루 늦게 피었다」)이 된다.
그의 첫 수필집 『그래도 행복했다』는 그 꽃들이 건네는 삶의 온기로 가득하다.
_박금아(수필가)
책 속으로
어버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부모님께 꽃을 선물한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런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카네이션만 해도 그렇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꽃으로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네이션은 하루 늦게 피었다」 부분
주름으로 뒤덮인 아버지 손은 맥박이 미약했다. 하지만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약하고 살가죽만 남았어도 흉터 하나 없는 아름다운 손이었다. 그 손으로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고 당신만의 멋진 필체를 남겼다. 또 자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내 처진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그 손은 최선을 다했고 성실했으며 온화했다.
-「아버지의 손」 부분
어떤 그리움은 추억의 감정을 넘어 삶의 본질을 일깨우는 철학으로 다가온다. 인간이란 결국 서로의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작은 이발소는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삶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향기 속에서 완성되어 간다. 작은 이발소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생성된 이야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가위에 머문 기억」 부분
당연하게 받아들인 수많은 시간 앞에서 나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언제나 내 편이었던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이제 정적만큼이나 무거운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예전에는 빈자리를 못 견디는 게 마음의 병이라 여겼으나, 이제는 안다. 그 자리는 결코 텅 빈 게 아님을. 그곳은 어머니가 평생을 바쳐 깎아낸 희생의 흔적이 남았다. 장롱 속 노트에 새겨진 서툰 사랑의 무늬들로 촘촘히 채워졌다.
-「양파 껍질의 무게」 부분
주변에 행복할 일들이 지천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봄비 지나고 난 뒤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꽃잎 한 장에도 행복은 스며 있다. 따뜻한 미역국에 상큼한 김치 한 조각을 맛보는 아침 식탁에도 존재한다. 일상에 소소하게 녹아 있는 작은 행복 조각들을 맞춰보는 6월이다.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행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행복했다」 부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한정된 시공간 풍경 액자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용기와 도전은 각자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아무래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 부분
붉은빛이 차츰 어두움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둥지의 온기를 다시 생각한다. 아이들의 작은 날갯짓이 내게는 여전히 소중하다. 누군가의 첫걸음, 누군가의 떨림, 그리고 누군가의 용기 있는 이별을 기억하려 한다.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는 날, 나는 조용히 손을 흔들며 말한다. 잘 가라, 잘 살아라. 너의 날갯짓을 믿는다. 이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진실한 축복이다.
-「둥지를 떠나는 날」 부분
매운맛을 그리워한다는 건 무뎌진 감각에 자극을 주고 싶은 간절함이다. 우리는 혀끝을 찌르는 통증을 통해 정체된 하루를 흔들어 깨운다. 또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확인한다. 만족과 포만감으로 내일을 버텨낼 새로운 용기를 얻는다. 물론 그 힘은 아주 적절하게 사용해야 효과를 발휘한다.
식탁 위에서 피어나는 작은 반란, 매콤함이 가진 특별한 힘이다.
-「‘매운맛’, 그 환희」 부분
계절이 수없이 바뀔 때마다 빛과 모양을 달리하며 나무는 향기로 말했을 것이다. 초록을 앞세우며 세상의 평화를 염원했을 것이다. 거기에 치욕스러운 역사의 시간까지 묵묵히 지켜봤을 노거수의 지난 세월을 헤아린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는 나무를 향해 두 손을 가만 모은다.
-「살둔으로 가는 길」 부분
이내를 볼 때면 단어의 무의미함을 느낀다. 그 빛은 인간이 만든 수많은 언어와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감정의 파동이며, 기억의 흔적, 삶의 의미다. 자연은 우리에게 멈추어 서는 법, 바라보는 법, 느끼는 법을 다양한 현상으로 알려준다.
-「이내」 부분
이제 정원은 스산한 겨울의 침묵에 들었다. “오늘 하루도 애썼다.”라는 말과 함께 생의 한 마디를 매듭짓는다. 정원을 가꾼다는 건 내면의 거친 자갈을 골라내고 삶의 향기를 길들이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계절이 제 몸을 온전히 다음 계절에 내어주듯 인간의 삶도 그렇게 순환한다. 삶은 저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위해 무르익는 것임을 정원의 사계가 일깨운다.
-「정원의 사계」 부분
나는 연필을 세워 그림을 그리고, 마음을 열어 글을 쓴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숲은 나를 기꺼이 품어주고 나는 숲을 노래한다. 늦가을의 풍경은 단지 계절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성스러운 제단이었다
-「숲에서」 부분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 삶은 비장하다. 그러므로 그건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맑은 보석처럼 빛나던 우연을 가장한 순간이다. 9회 말 투아웃에 받아친 짜릿한 홈런 한 방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와 함께했던 시간까지, 생각해 보면 결정적 순간이 나를 예까지 데려왔음을 이제야 알겠다.
-「결정적 순간」 부분
오늘 밤, 나는 바늘 끝이 떨리며 피어오르는 아날로그 음률과 함께 고즈넉한 추억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잔잔한 빗소리와 어울린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선율이 유독 짙은 청각적 색채를 띠며 영혼을 어루만진다. 효율과 속도만이 미덕인 세상에서 잠시 발을 멈춘다. 따스하고도 투박한 온기에 기대어 깊어가는 가을을 앓는 것, 그건 내게 허락된 사치스럽고도 아름다운 위안이다.
-「잊힌 계절의 향기」 부분
물론 지나친 덜어냄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삶은 더하기보다 빼기가 더 아름답다. 남김없이 비워낸 자리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한 사람처럼 천천히 돌아온다. 덜어낼수록 선명해지는 것들, 오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미학은 어쩌면 한 줌의 여백으로 시작된다.
-「덜어냄의 미학」 부분
낱낱의 말이 천진한 눈으로 묻는 것 같다. 너희들이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진정 나를 사랑하기나 했느냐고 말이다. 영혼 없이 관습화된 글쓰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득 거기서 벗어나고 보니 가슴을 울리는 어휘가 빛살처럼 지나간다. 무미건조한 문장 속에서 촉촉함을 전해줄 단어, 어디에 어떤 게 어울리는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야 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이름은 언제나 홀대받고 살아온 소박한 부사였다.
-「부사가 등을 토닥이다」 부분
도대체 몇 시간을 들여다보며 혼을 쏟았을까? 눈썹은 꿈틀거리듯 선명하고, 수염은 불면 날아갈 것 같다. 잔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생동감을 준다. 보기만 하는데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자화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림 속 시선이 나를 꿰뚫어 본다. 강렬한 눈빛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시공간을 초월해 팽팽한 기싸움이라도 할 모양새다.
-「자화상自畵像」 부분
차례
1부
카네이션은 하루 늦게 피었다/ 양은 도시락/ 아버지의 손/ 졸업앨범/ 가위에 머문 기억/골목길/ 양파 껍질의 무게/ 그래도 행복했다/ 속초, 추억으로 가는 길 위에서/ 속초 청호동
2부
408번째 월급/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 루틴/ 정도正道의 길/ 제가 해보겠습니다/
둥지를 떠나는 날/ ‘매운맛’, 그 환희/ 졸업의 완성/ 지는 연습/ 아는 만큼 보인다
3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살둔으로 가는 길/ 독도에서/ 동강의 새벽처럼/ 이내/
시골집 정취를 만나는 시간/ 담, 풍경이 되다/ 정원의 사계/ 숲에서/ 새벽 산책/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젓가락 문화/ 도피안사到彼岸寺/ 풀꽃과 항아리/
채워지는 달
4부
선線 위의 인생/ 결정적 순간/ 지혜 전성시대/ 곡선의 길/ 잊힌 계절의 향기/ 인연투쟁/
느려도 괜찮아/ 덜어냄의 미학/ 영점零點/ ‘지금’에 머물다/ 부사가 등을 토닥이다/
실수와 액땜/ 잠시 멈춤/ 자화상自畵像
저자 약력
최상훈
강원도 속초 중앙수산시장 골목에서 태어났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다, 삶의 지혜를 차근차근 가르쳐 주신 훌륭한 부모님 덕분에 행복이란 단어를 제법 일찍 경험했다. 속초고등학교를 거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35년을 공립 중등 과학교사로 많은 제자들과 만났다. 쉰 살을 넘어 시작한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음악, 그림, 사진, 여행, 캘리그라피 등의 일상을 천 편 이상 차곡차곡 담았다. 2024년 강원문학교육 신인작가상, 2025년 좋은 생각 생활문예전 수상, 2025 『에세이 문학』에 여행 수필 「살둔으로 가는 길」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그래도 행복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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